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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미디어붓다] 운암 김성숙 선생 제48주기 추모재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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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항단연 작성일17-03-29 10:32 조회9,31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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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12일 11시 국립현충원서 정관계 및 종교계 인사 참여 예정 

민성진 회장 "불교계도 태허스님에 대한 올바른 재평가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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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 출신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역임한 운암 김성숙(봉선사 태허스님, 사진)의 제48주기 추모재가 국립서울현충원서 오는 4월 12일 오전 11시 봉행된다.

 

사단법인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회장 민성진)는 우리나라 민족사에서 치욕의 시기였던 일제강점기에 조국과 민족을 위해 희생한 운암 김성숙 선생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오는 4월 12일 오전 11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운암 김성숙선생 서거 제48주기 추모재’를 엄숙히 개최한다고 3월 28일 밝혔다.

 

이번 추모재에는 유족, 관련단체장, 회원 등 3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며, 추모재는 개식, 국민의례, 운암 김성숙 선생 약사보고, 내빈 추모사, 합창단 추모곡, 헌화 및 분향, 조총발사 및 묵념, 운암 김성숙선생 묘소 참배 순서로 진행된다. 특히 부천 석왕사합창단, 역사어린이합창단, 국방부 군악대, 국방부 의장대가 참여해 운암 김성숙 선생의 애국충절 정신을 최대한의 예우로 기린다.

 

추모재에는 정관계에서도 추모의 뜻을 전할 예정이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운암선생은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 최전선에서 싸우던 분열된 독립운동 통합을 위해 애썼고 해방 후 좌우 대립과 독재를 극복하고 통일국가의 초석을 놓으셨다”라고 밝힐 예정이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해방을 맞아 환국을 준비하면서 임시정부 ‘약법3장’을 통과시킨 운암선생은 대립이 안닌 통합을 위해 좌우 모두 포섭하면서 미.소 강대국과 평등한 외교관계를 수립해야한다는 대목은 지금 우리의 외교 상황에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평가할 예정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운암 김성숙 선생 추모재를 통하여 일생을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헌신했던 선생의 생애가 보다 많은 시민들에게 알려지기를 희망한다”고 밝힐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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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성남시장은 “독립운동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하는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아 민족정기를 세워야 한다”며 “운암 김성숙 선생의 일생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안락한 삶과는 거리가 있었으며 조국과 민족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가득한 삶이었다”고 기릴 예정이다.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는 이날 추모재에는 정세균 국회의장,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정동영 국민의당 국회의원, 이경근 서울보훈지청장, 함세웅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장, 이재명 성남시장, 전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 부천 석왕사 주지 영담 스님, 독립운동가단체장이 내빈으로 참석한다고 밝혔다.   

 

민성진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회장은 “운암 김성숙 선생은 용문사 출가스님(태허스님)으로 조선의용대, 의열단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역임하시며 항일독립운동에 앞장섰으며, 해방 후 정치가로서 민주화투쟁에 앞장서며 조국 통일을 위해 헌신하셨던 위대한 지도자로 평가되는 인물”이라며 “불교계에서도 태허스님에 대한 재평가와 함께 2017년에는 태허스님께서 주창하시던 평화통일의 초석을 다지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문의: 010-2211-7311, 010-6219-6066)

 

 

운암 김성숙(雲巖 金星淑)선생은?
1898년 평안북도 철산에서 태어난 운암 김성숙 선생은 19세에 경기도 양평 용문사에서 출가했으며, 승려시절인 1919년 '조선독립군 임시사무소' 명의의 격문을 뿌려 옥고를 치르는 등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중국으로 건너간 태허스님은 조선의용대, 의열단 투쟁을 조정하시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도 활동하시고, 광복 이후에는 정치인으로서 통일을 위해 헌신했으며 신민당 창당의 주축으로 지도위원을 맡아 활동하시다 1969년 4월 12일 서거했다.
정부는 태허스님의 공훈을 기려 198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고, 국가보훈처는 2008년 4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