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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뉴스1] “자유로운 개인의 연대…촛불이 바로 우당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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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항단연 작성일17-03-27 15:10 조회9,47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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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우당장학회 이사장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신교동 우당기념관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3.24/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정치 1번지 종로의 4선 국회의원, 군사정권 정보기관의 그늘을 걷어낸 개혁 국정원장, ‘3당합당’ YS에 맞선 대통령선거 도전 등 이종찬 우당장학회 이사장이 걸어온 길은 대한민국 현대정치의 하이라이트다. 그러나 그의 가장 자랑스러운 이력은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1862~1932)의 친손자라는 사실이다.      

지금의 명동성당 인근 YWCA 주차장 옆에는 우당의 옛 집터를 알리는 표석이 서있다. 이 일대가 모두 우당 일가의 집터였고, 중국으로 독립운동을 위해 망명할 때 정리해 간 재산이 지금 돈으로 치면 600억원에 이르렀다고 하니 그의 집안이 어느정도 권문세가였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친일의 변절이나 방관의 처세 대신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외로운 독립운동의 길을 택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전형이었다.     

올해 우당 탄생 150주년(4월21일)을 맞은 이종찬 이사장의 마음가짐은 남다르다. 2019년 3.1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어 더욱 그렇다. 8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릴 탄생 150주년 기념 전시회는 스스로 노비를 해방하고 민중 속에서 자유와 평등을 실천한 우당의 삶을 좀더 친근하게 보여줄 계획이다.     

우당 이외에도 이름없는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하는 일에도 전력을 쏟고 있다. 이 이사장은 “우당이나 단재 신채호의 연구는 좀 이뤄졌는데 다른 분들은 거의 묻혀있다”며 “숨어있는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해 우리 독립운동사의 한 챕터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최순실게이트, 탄핵과 조기대선으로 이어지는 격변기에서 우당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도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촛불집회를 “자유로운 개인의 의지가 모인 것”이라며 우당의 정신과 일맥상통한다고 해석했다. 또 “박근혜 전 대통령은 (박정희 시대처럼) 국가가 모든 것을 끌고 가려하다가 실패했다. 중앙권력이 비대한 사회는 패권적 사회이며 지방(정부)의 연합체가 곧 국가가 돼야한다”며 자유와 자발성을 강조한 우당의 가르침을 역설했다.     

서울시와 함께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을 추진 중인 이 이사장은 임시정부기념관과 100주년 기념물 건립계획을 밝히며 소극적인 정부를 질타하기도 했다.   

이 인터뷰는 24일 서울 종로구 우당기념관에서 이뤄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올해로 우당 이회영 선생 탄생 150주년을 맞는다.
▶학술회의 등 공식적인 행사 외에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박물관은 방학기간인 8월이 제일 바쁠 때인데 장소를 허락해줬다. 프랑스는 레지스탕스 역사를 높이 평가한다. 특히 국민들 마음에서 우러나온다. 국가가 강조하지 않아도 영화, 문학 등에 계속 다룬다. 인간이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싸운 과정을 높이 승화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기념할 때 한 사람만 너무 높게, 대중들과 멀게 만든다. 그럼 누가 국난이 닥쳤을 때 스스로 나가서 싸우겠는가. 정부가 하듯이 거창하게 행사만 하고 끝나면 우리와 먼 곳의 이야기가 된다. 우당은 남대문시장 상인 신도가 많은 상동교회를 다녔다. 민중과 더불어 사는 삶이었다. 우리 속에도 곳곳에 우당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정부부터 나서야 할 일 아닐까.
▶우당이 남다른 건 익명성이다. 내가 하는 일을 절대로 자랑하지 말라, 대가를 원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우리 가풍이 별로 뭘 바라거나 하지 않는다.(웃음)     

-촛불정국, 탄핵과 조기대선 등 국가적 격변기에서 우당이 주는 교훈은.
▶중앙권력이 너무 강하면 안 된다. 요즘은 제왕적 대통령제라고들 한다. 중앙권력이 비대한 사회는 패권적 사회다. 그걸 막으려면 중앙보다 지방을 풍요롭게 해야 한다. 지방의 연합체가 국가가 돼야한다. 분명 박정희 대통령의 공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 시대에 맞는 이야기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직도 국가가 모든 것을 끌고 가려하다가 실패했다. ‘문화융성’을 하려면 개인에게 엄청난 자유를 줘서 창조성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해야 했다. 블랙리스트나 만들고 국가를 따라오도록 하면 이미 문화가 아니다. 우당에게 배울 것은 바로 자발성이다. 촛불이 그래서 위대하다. 내가 촛불을 지지하는 이유가 자유로운 개인들의 의지가 모인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직접 집회에 참여해봤는데 한 취객이 경찰을 밀치고 청와대 앞까지 가자고 선동해도 젊은이들이 ‘비폭력’을 외치더라. 바로 이런 것이다. 누가 호루라기 불어서, 강제로 모이라고 해서 모인 것이 아니다. 우당의 기본은 자유로운 선택이다. 그래서 아나키즘 운동을 했다.      

-이미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끝났다고 하는데 우당의 아나키즘 사상이 지금도 의미가 있나.
▶아니키즘은 사상이 아니다.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같은 ‘경전’도 없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유물사관 같은 것과 다르다. 당이 끌고 가는 것을 철저히 배격했다. 아나키즘은 해탈의 상태다. 사상이 아니라 인간이 강제 없이 자유로운 선택으로 공동체를 이루는 삶의 태도다.  

이종찬 우당장학회 이사장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신교동 우당기념관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3.24/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서울시와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을 함께 추진 중인데.
▶중앙정부에 2019년 3.1운동,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의 중요성을 누차 강조했다. 직접 국회를 설득해서 기념사업 예산도 편성해냈지만 정부가 지금까지도 발주를 하지않고 있다. 100주년 사업의 핵심은 임시정부기념관과 기념물 건립이다. 서울시가 서대문구의회 부지를 임시정부기념관을 위해 내놓았다. 보훈처는 기념관은 모금해서 짓고 국가에 기부채납하라고 한다. 내가 정권 실세도 아닌데 미르재단 수백억원 모금하듯이 할 수 있나?(웃음) 또 그 부지는 서울시 땅인데 기부채납을 할 수가 없다. (정부가) 하고 싶지 않으니 못하도록 자물쇠를 채우고 있다. 100주년을 맞아 프랑스가 프랑스혁명 100주년 기념으로 세운 에펠탑 같은 기념물도 건립해야 한다. 박원순 시장과 공모를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3.1운동은 중국 5.4운동에도 영향을 줬다. 저 작은 나라도 하는데 우리는 부끄럽지 않느냐고 해서 일어난 중국인들의 항일운동이다. 5.4운동을 계기로 중국공산당이 생겼고 오늘의 중국을 이뤘다. 중국도 5.4운동 100주년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3.10운동 100주년 기념물이 생기면 우리도 자부심을 느낄 수 있지 않겠나.

-우당 기념사업 관련해 앞으로 큰 계획이 있다면
▶독립운동에는 임시정부, 동북항일연군 등 몇 개 큰 줄기가 있다. 하지만 아나키스트 독립운동은 연구가 매우 빈약하다. 그나마 우당이나 단재 신채호의 연구는 좀 이뤄졌는데 다른 분들은 거의 묻혀있다. 그걸 꼭 정리하고 싶다. 숨어있는 인물들을 발굴해 우리 독립운동사의 한 챕터로 만들겠다. 아나키스트들은 스스로 기록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후손들도 그렇게 자리를 잡은 분들이 없다. 제가 조금 더 힘을 모아서 앞장서 해야한다.    

-독립운동가 후손으로서 국정역사교과서가 불러온 건국절 논란을 어떻게 보나.
▶건국절 주장하는 사람들이 이승만 대통령을 앞세우는데 정작 이 대통령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건국은 1948년이 아니라 1919년 임시정부 건립 때라고 확언했다. 왜 그랬을까. 우선 제2차 세계대전 후 신생국이 우후죽순 생기던 시절이다. 5000년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가 그런 나라들과 동급이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 통일시대를 내다보고 우리가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북한이 건국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5000년 역사와 임시정부 법통을 이은 우리나라의 정통성과 상관없이 일부 지역을 차지해 임의로 만든 나라가 된다. 그런 이승만 박사의 철학을 일부러 깎아내려서 우리를 왜소하게 만드는 이유를 모르겠다. 스스로 북한과 동격으로 만들고 있다.     

-국민의 정부 시절 국정원장으로서 ‘사바크(이란 팔레비왕조 시절 비밀경찰)가 아니라 모사드(이스라엘 정보기관)가 돼야한다’는 지론을 폈다 그러나 국정원은 댓글공작 사건 등 여전히 국내 정치 개입 논란에 휘말렸다.
▶모사드 본부에는 시오니즘의 창시자인 테오도르 헤르츨(1860~1904)의 거대한 초상화가 걸려있다. 유대인의 옛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지금의 이스라엘)을 되찾자는 게 시오니즘이다. 국정원장으로 있을 때 단재 신채호와 백범 김구의 초상화를 걸어놨다. 단재는 의열단 조선혁명선언을 기초한 분이다. 김구는 한인애국단을 이끌며 이봉창, 윤봉길 열사를 배출했다. 그런 분들의 정신이 국정원의 정신이라면 절대 국내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 모두 다 사랑하는 우리 국민이고 사해동포인데 어떻게 그들을 사찰하고 리스트를 만들겠는가. 일본 특무부대, 고등계 형사의 전통을 잇다보니 국민들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다. 김창룡, 노덕술, 전봉덕이 정보기관의 전통이 되면 국정원은 영원히 국내정치 개입 시비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일시적으로 고쳐도 정권이 바뀌면 그만이다. 국정원의 정신부터 국민을 사랑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모사드는 요원이 많지 않다. 해외에 유급 에이전트도 별로 두지 않는다. 그래도 전세계에 퍼져있는 모든 이스라엘 국민이 모사드를 위해 자발적으로 협조한다.

-블랙리스트를 지시한 혐의로 구속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중앙정보부 시절 같이 근무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때는 ‘불령선인’이라는 블랙리스트가 있었다. 일제의 정신이 유산으로 남아 지금도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것이다. 약산 김원봉이 친일경찰 출신 노덕술에게 수갑을 찬 치욕에 월북하지 않았나. 국민을 같은 동포가 아니라 뭔가를 일으킬 불순분자, 감시의 대상으로 여긴다. 김기춘 실장은 가정사는 안 됐지만 아직도 권력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해 안타깝다. 차라리 신념이라도 있다면 최순실을 모른다, 만난 적도 없다고 할 수 없다. 김재규 아래서 중앙정보부 국장을 지냈는데 최태민 일가를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된다.(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당시 최태민 일가 문제를 조사해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헌정사 최초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을 지냈는데 조기대선 후 인수위 없이 곧바로 국정운영에 들어가야 하는 새 정부에 조언을 한다면.
▶혹자는 셰도우캐비닛을 만들라고 하는데 사실상 어렵다. 캠프 내에서 일부에게 소외감을 주게 된다. 프랑스는 인수위 없이 당선되면 다음날 곧바로 취임한다. 그쪽 정치문화는 평소 당의 각 분야 실력자들이 공인돼있어서 당장 정부를 맡아도 이상할 게 없다. 지금 우리 후보들이 공개는 못하지만 생각하는 사람은 있을 거라고 본다. 다만 검찰개혁, 자주국방, 경제 등 몇가지 주요분야는 확실한 적임자를 정해놓고 있어야 한다.  

우당 이회영 선생(1862~1932). 우당은 권문세가로서 기득권을 포기하고 중국으로 망명,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일제 앞잡이들을 응징하는 의열투쟁을 전개했다.(우당기념관 제공)© News1

-민정당과 새한국당 창당, 최초 수평적 정권교체의 산파를 맡으며 수많은 대통령의 명멸을 지켜봤다.  
▶역대 대통령 중 세분을 꼽는다.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이다. 세 분 모두 과가 있었지만 공도 크다. 이승만 대통령은 포석이 굉장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 당시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측면도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후반기 실수가 있었지만 사실 당시 건강이 받쳐주지 못해서였다. 나머지 대통령은 대개 나라를 위해서라기보다 대통령을 하기 위해 대통령을 했던 것 같다. 대통령은 만물박사가 아니다. 자기 방향을 잡고 사람을 잘 쓰면 된다. 박정희 대통령은 첫 번째 총리로 최두선씨를 썼다. 자신을 그렇게 비판했던 동아일보 사장 출신이었다. 전두환 대통령도 자신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남덕우, 유창순, 김상협 등 자기보다 나은 사람들을 썼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람을 운용하는 데서부터 실패했다. 사드 문제가 어려워진 것도 한 예다. 국무총리가 사드 배치 결정 일주일 전에 중국을 방문했는데 시진핑 주석에게 결정된 게 없다고 했다. 속인 셈이 됐다. 최소한 총리에게 지침이라도 줬어야한다. 그러면서 (최순실이 부탁한) 문체부 국장 인사는 챙겼다.     

-과거 서울시장에 뜻이 있었다는데 현 박원순 시장은 어떻게 평가하나.
▶1998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 후 서울시장 출마를 생각하고 사무실까지 얻었다. 그런데 김 대통령이 국정원이 제일 중요하다며 국정원장을 맡겼다. 박원순 시장과는 사실 악연이 있었다. 2000년 참여연대 시절 나를 낙천운동 대상자로 올려 내가 고소한 적도 있다. 나중에 박 시장이 나를 대상자에 넣은 건 좀 잘못이었던 같다고 하더라.(웃음) 이번에 3.1운동 100주년 사업을 추진하는 것을 보면서 역시 박원순이라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 꼭 하고싶은 일은.
▶회고록 제3권을 쓸 계획이다. 지방분권 개헌과 양원제 실시 등 국가적 과제의 필요성을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써보려 한다.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을 성공시키고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를 발굴하는 일도 중요하다. 이 일들을 10년 안에 마치고 싶다.       

◇이종찬 우당장학회 이사장 프로필
▲1936 중국 상하이 출생 ▲1960 육군사관학교 졸업 ▲1971 육군 소령 예편 ▲1981 제11대 국회의원 ▲1985 제12대 국회의원 ▲1988 제13대 국회의원, 정무1장관, 민정당 사무총장 ▲1992 제14대 국회의원, 새한국당 창당, 대통령 후보 출마  ▲1997 대통령직 인수위원장 ▲1998 국가안전기획부 부장(국정원장) ▲현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건립준비위원장, 우당장학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