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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잊혀가는 ‘4월 참변’, 사진으로 생생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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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항단연 작성일13-12-11 09:23 조회9,28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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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가는 ‘4월 참변’, 사진으로 생생 증언
■ 박환 교수, ‘이주 150년’ 앞두고 조선인 학살사진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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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 4월 5일 러시아 극동지역 스파스크에서 일본군들이 한인 독립운동가들을 잔인하게 학살한 뒤 무덤덤한 표정으로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박환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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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 4월 일본군에 의해 불타고 있는 러시아 하바로프스키의 한인 독립군 가옥들. 박환 교수 제공
러시아 한인들의 삶은 ‘비사’다. 굴곡진 역사 속에서 갖은 수모를 당해야 했던 비사(悲史)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알려지지 않아서 비사(秘史)이기도 하다.

최근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 명부 등이 발견되면서 역사의 뒤안길에 묻힌 사람들의 넋이 하나둘씩 위로받는 것 같다. 그들을 기리려는 다양한 움직임도 포착된다. 잊힌 기억을 불러오는 건, 역사를 바로 세우는 첫걸음이다. 하지만 러시아 한인들에 대한 연구와 재조명은 여전히 ‘먼일’이다. 러시아와 한국 간 국교 수교가 늦어진 탓에 일제강점기 당시 러시아에서 펼쳐진 독립운동 역시 다른지역에 비해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박환(사학) 수원대 교수가 점점 어렴풋해져 가는 러시아 한인의 역사를 오랜 연구결과를 토대로 되살렸다.

20년 동안 현지조사와 연구 등을 통해 수집한 수백 장의 사진과 함께 ‘사진으로 보는 러시아 지역 한인의 삶과 기억의 공간’(민속원)을 펴낸 것. 2014년 러시아 한인이주 150주년을 맞아 발간한 이 책에서 박 교수는 그동안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사진을 공개했다. 보다 실감 나고 생생하게 러시아 한인들의 역사를 알리기 위해서다.

박 교수는 “러시아 한인들은 시베리아횡단열차 건설 등 연해주 개척에 피와 땀을 흘렸고, 한인독립운동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며 “러시아 이주 한인들의 흔적을 일반 대중에게 생생하게 알리고 싶다”고 전했다.

그는 독립운동가 최재형(1858∼1920) 등 러시아 한인 3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에 집중했다. 이는 재러동포들의 대일투쟁에 대한 일본군의 보복, 즉 1920년에 일어난 4월 참변이다.

박 교수가 러시아 현지에서 입수한 사진들은 비사(悲史)의 깊이를 잴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이다. 박 교수는 “하바로브스크의 불타는 가옥(217쪽)과 스파스크의 학살 장면(217·221쪽) 등은 블라디보스토크뿐 아니라 일본군의 만행이 러시아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대부분 블라디보스토크 아르세니예프 박물관에서 구입 또는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교수에 따르면 1919년 3·1운동 소식이 전해지자 3월 8일 신한촌에서는 한국이 독립되었다는 방이 붙기도 했는데, 3월 17일에는 많은 사람들이 큰길에 모여서 연설을 하고 독립선언서를 배포했다. 신한촌은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한인밀집지역으로 당시 러시아지역 독립운동의 거점이며 ‘항일운동 성지’로 불렸다.

일본측은 러시아 관헌에게 제재를 요청했지만 그 열기는 꺾지 못했다. 같은 해 4월 3일에는 신한촌에서 대대적인 만세운동이 전개되기도 했다. 결국, 일본군은 다음 해 대대적인 보복을 감행한다.

1920년 4월 4∼5일 일본군은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과 우수리스크 등 한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을 습격해 가옥 등을 파괴하고 다수의 한인을 살상했다. ‘4월 참변’이다. 이때 러시아 지역 대표 독립운동가 최재형이 사살당하게 된다.

박 교수는 “일본측 기록에는 한인 60명을 체포했다고 하는데, ‘소련한족사’(김승화 저)에 따르면 300여 명 넘는 한인들이 체포됐고 일본군이 그들을 학교에 가둔채 건물을 불태워 죽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최근 간토(關東)대지진 피살자, 3·1운동 애국자 피살 명부 등이 발견되며 국민적 관심을 모으고 있는데 수백 명의 러시아 한인의 목숨을 앗아간 1920년 4월 참변은 잘 알려지지 않아서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당시 독립신문은 ‘해삼위(블라디보스토크의 옛 명칭)사건’으로 4월 참변을 기록한다.

박 교수는 “일본의 직접적인 감시와 회유에도 불구하고 일부 신한촌 한인들은 계속해서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4월 참변 이후 러시아 지역 항일운동은 쇠퇴했다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