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반대 거세자 한발 후퇴
등록 다시 추진할 여지 남겨
친일 논란에 휘말린 백선엽, 민철훈, 윤응렬, 윤치호, 민복기 등의 의복과 유물 총 11건 76점에 대한 근대 문화재 등록이 일단 무산됐다. 문화재위원회 근대문화재분과는 13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회의를 열고 이들 유물에 대한 문화재 등록 여부를 심의한 결과 판단을 ‘보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 6월21일 문화재청이 백선엽 등 5명의 의복과 유물에 대한 문화재 등록을 예고한 이래 항일·독립운동가 단체들을 중심으로 “왜 하필 친일 행위자들의 물품이냐”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당시 문화재청은 이들 유물이 의생활 분야에서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크다고 주장했다. 백선엽(92) 전 육군참모총장의 군복에 대해선 “대한민국 육군 장군을 역임한 백선엽이 착용한 하예복, 동정복, 동만찬복, 동근무복과 트렌치 코트로 대한민국 장군복의 각 유형별 복식형태를 알 수 있다. 또 계절이나 착용 목적에 따른 형태 비교도 할 수 있어, 현대 군사복의 변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얼마 전 국방부가 논란 속에 ‘백선엽 한미동맹상’ 제정을 강행하는 등 박근혜 정부 들어 백선엽 전 총장을 전쟁 영웅으로 기리는 작업은 활기를 띠고 있다. 백선엽 전 총장은 6.25 당시 전과를 세우고 1952년 육군참모총장에까지 올랐지만, 1943년부터 해방 때까지 만주국군 산하 간도특설대의 장교로 복무하며 항일 투쟁을 벌이던 조선인과 중국 팔로군을 토벌했던 인물이다.
‘운암 김성숙 선생 기념사업회’와 ‘단재 신채호 선생 기념사업회’ 등 항일·독립운동가단체들은 지난 8일 기자회견에서 유물의 원래 소장자들이 “2009년 11월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되거나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오른 인물”이라며 문화재 등록을 반대했다. 12일에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도 같은 이유로 반대 뜻을 밝힌 바 있다.
문화재위원회가 이날 ‘결정’ 또는 ‘불가’가 아니라 ‘보류’라는 판단을 내린 것은, 유물 자체엔 문제가 없지만 이런 비판과 논란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화재 등록을 위해서는 한달 동안의 예고기간을 두어 하자 유무 등 여론을 수렴하게 돼 있다. 이번 판단은 등록을 다시 추진할 여지를 남겨둔 것이라 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