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년 사제생활 마무리…"교우, 민주화 동지에 미사 봉헌"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 "사랑하는 청구성당 교우 여러분, 사제들과 모든 은인들 그리고 민주화 과정에서 숨진 선후배들을 마음 속에 모시면서 이 거룩한 미사를 봉헌하겠습니다"
26일 오전 11시 서울 신당동 청구성당. 함세웅 아우구스티노 신부가 44년의 사제생활을 정리하는 마지막 미사가 700여명이 넘는 신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렸다.
수용인원이 400명인 성전(聖殿)에 자리잡지 못한 신도들은 뒤에 서거나 1층 만남의 공간에 마련된 TV로 미사를 지켜봤다.
함 신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부 송기인 신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전종훈 대표 등 10명의 사제 뒤로 입장해 "남북 겨레를 기억하며 제주 강정 마을을 비롯해 한반도의 정의ㆍ평화를 실현해주소서"라며 미사를 시작했다.
함 신부는 마지막 미사의 강론으로 마태오복음 11장 28절을 선택했다.
그는 "'무거운 짐을 진 자는 나에게 오너라'란 복음을 통해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예수님의 연민과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강론에서 "사제생활 동안 '예수님은 누구인가'란 본질적 질문에 답을 구하려 했다"며 "예수님은 33세 때 타살당한 고통받는 존재였고 청년 예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제 삶의 주제어이자 핵심본질이었다"고 밝혔다.
강론 후 신도들이 준비한 퇴임 행사에서는 '사제생활의 과거와 현재'란 동영상이 성당벽에 상영됐다. 함 신부가 신학교 시절 베레모를 쓴 흑백사진이 공개되는 장면 등에서는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그러나 '교회가 자리한 곳이 곧 삶의 현장이다. 잘못된 사회,정치제도는 교회에서 바로잡아야 한다"란 그의 신념이 글귀로 올라오자 분위기는 곧 숙연해졌다.
함 신부는 '첫사랑 완결, 청구성당을 마음에 품고 갑니다'란 고별사에서 "76년에 처음 감옥에 갇히자 저의 첫 본당인 응암동 성당 교우들이 저를 위해 헌신적으로 기도해주셨다"며 "첫 본당인 응암동 성당이 제 첫사랑이라면 청구성당은 저의 이런 첫사랑의 완결"이라고 말했다.
70년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창립을 이끌었던 그는 76년 3ㆍ11절 민주구국선언에 참여했다 투옥돼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후 79년 부마항쟁당시 문정현 신부과 또 다시 구속된 바 있다.
함 신부는 "서울대교구 사제 인사발령에 제 이름이 제일 위에 올랐다"며 "이제 저는 '노땅'"이라며 마지막 미사를 마무리했다.
교회법상 신부의 은퇴연령은 만 75세이지만 올해 만 70세인 함 신부는 지난해 4월 정진석 추기경이 은퇴하자 정 추기경이 물러나면 퇴임하겠다는 약속대로 일찍 미사전에서 내려왔다.
이날 미사엔 정동영 민주통합당 고문, 이부영 전 의원, 곽노현 서울교육감, 김상곤 경기교육감, 서기호 의원 등 각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정 고문은 "함 신부님은 고통의 현장으로 나가 직접 민주화 불꽃을 당기신 분"이라며 "대학 때 신부님을 처음 알았데 늘 그런 모습을 이어가실 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함 신부는 은퇴 후 원로사목자로서 제2의 삶을 시작한다.
현재 맡은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 김재규장군명예회복추진위원회 공동대표 등은 계속할 방침이다.
그는 은퇴 후 정치활동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에 대해 "예수님 정신으로 한결같이 선후배 동지들과 함께 길을 걸어가는 것일 뿐이지 정치적으로 나설 생각은 없다"며 "그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해석일뿐"이라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