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세웅 신부가 26일 오전 서울 중구 신당동 청구성당에서 은퇴를 공식적으로 알리는 '이임 감사미사'를 봉헌하고
'민주화운동 주역' 함세웅 신부 은퇴미사
서울 청구성당서 마지막으로 진행
“타살된 예수가 그리스도교 본질”
사제단 창립주도…두차례 투옥도
시민사회 원로로 두번째 삶 시작
민주화운동의 주역이자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창립을 주도한 함세웅(70) 신부가 은퇴미사를 열고 44년의 사제생활을 마감했다.
함 신부는 26일 오전 자신이 주임신부로 있는 서울 중구 청구성당에서 은퇴를 공식적으로 알리는 ‘이임 감사미사’를 진행했다. 함 신부는 미사에서 “타살 당한 33살 청년예수, 이것이 그리스도교의 본질”이라고 순교정신을 강조하면서 짤막한 강론을 끝맺었다.
이날 미사에 참석한 서기호 통합진보당 의원은 “다른 종교와 구별되는 그리스도교의 핵심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순교정신”이라며 “함 신부님 말씀을 ‘불의를 보면 적당히 넘어가지 말고 저항하고 바로 잡으려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정동영 민주통합당 상임고문도 미사에 참석한 뒤 자신의 트위터에 “함세웅 신부님의 이름 석자는 고통받고 억압당한 모든 이들의 의지처였으며, 함 신부님의 삶은 하느님의 ‘의’를 이 땅에 실현하고자 몸을 던져온 일생이었다”는 글을 남겼다.
4·19혁명이 일어난 해인 1960년, 가톨릭대에 입학한 함 신부는 군 전역 뒤 1965년부터 1973년까지 이탈리아 로마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유학 중이던 1968년 6월 사제 서품을 받았고, 귀국 뒤 서울 연희동 성당에 보좌신부로 부임하면서, 당시 일본에서 납치됐다 돌아온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게 된다.
이후 1975년부터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핵심으로 본격적인 민주화운동을 시작했고, 1976년 3·1절 미사에 참석한 이들이 ‘민주구국선언문’을 발표했다 대거 구속된 명동성당 사건 때 2년형을 선고받는 등 두차례 투옥됐다. 1987년 6월 항쟁 때는 서울대교구 홍보국장으로 일했으며, 가톨릭대 교수를 거쳐 장위동성당·상도동성당·제기동성당 주임신부를 지냈다.
함 신부는 은퇴 뒤에도 ‘원로 사목자’ 지위를 유지하면서,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이자 ‘10·26 재평가와 김재규 명예회복 추진위원회’ 공동대표, 시민사회 원로원탁회의 일원 등으로 각종 활동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함 신부를 잘 아는 한 지인은 “어느 교인의 후원으로 혜화동에 작은 사무실을 이미 마련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