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연합뉴스) 김재홍 기자 = 일제강점기 부산 의열단 단원 박재혁 의사를 기리는 기념사업회가
최근 국가보훈처로부터 비영리법인 설립 허가를 받았다.
20일 부산보훈청에 따르면 국가보훈처는 이달 18일 박재혁 의사 기념사업회의 비영리법인
설립을 허가했다.
부산보훈청 관계자는 "비영리법인은 누구나 설립할 수 있으나 국가보훈처가 비영리법인
설립을 허가했다는 것은 정부 행사 관련한 활동을 할 수 있는 단체로 승인했다는 것"이라며
"다른 비영리법인과 격이 달라진 셈"이라고 말했다. 기념사업회는 올해 5월 창립했다.
박 의사는 직계 유족이 없고 그동안 독자적인 기념사업회도 없어 박 의사 여동생의 손녀인
김경은 씨가 유족대표로 활동했다.
김씨가 직접 발 벗고 나서서 뜻있는 단체와 행정기관 도움을 받아 정기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생가터 표지판 설치를 추진하는 등 고군분투했다.
김씨와 박 의사 모교인 개성고(옛 부산상업고등학교) 동창회 관계자 등은 흉상 건립 등 동문의
역할을 다하려고 노력했으나 미흡해 기념사업회를 창립한 데 이어 국가보훈처에 비영리법인
설립을 허가를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대표인 김씨는 "그동안 개인 자격으로 활동하면서 서러운 일이 많았다"며 "박 의사님
거사 100주년에 맞춰 비영리법인 설립을 허가받아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박 의사는 1895년 5월 17일 부산 범일동에서 태어나 부산상업학교(부산상고, 현 개성고등학교)
를 졸업했다.
학생 시절부터 강렬한 민족의식을 지니고 항일 운동에 참여한 박 의사는 1919년 3·1 독립운동
이 일어나자 부산 의열단 단원으로 활동했다.
1920년 9월 14일 하시모토 슈헤이 부산경찰서 서장을 만난 자리에서 폭탄을 투척했다.
박 의사는 중상을 입은 상태로 체포돼 사형 선고를 받고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다.
이후 혹독한 고문 등에 시달리다가 폐병에 걸렸고 "왜놈 손에 죽기 싫어 아무것도 먹지 않겠다"며
사형 집행 전 긴 단식 끝에 1921년 5월 11일 숨졌다.
정부는 고인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