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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오마이뉴스] "김원봉 서훈 못하더라도 위령비 하나만이라도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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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9-20 11:06 조회10,58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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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조선의열단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 '조선의열단 100년의 역사인식' 


"당장 김원봉을 서훈하지 못하더라도, 위령비 하나만이라도 우리 시민들의 손으로 적절한 때, 적절한 장소에 세워야 한다고 본다."

19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조선의열단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 '조선의열단 100년의 역사인식'에서 김삼웅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공동대표의 발언 중 일부다. 

김 공동대표는 "남쪽에서는 소외되고 북쪽에서는 숙청되면서 보상은커녕 보복을 당해야만 했던 김원봉과 의열단을 이제 우리 국민들이 살려내야 할 것 같다"라면서 제도권이 하지 못한다면 시민들이 김원봉 선양에 나서야함을 역설했다.

의열단 100주년 학술대회에 다시 소환된 '김원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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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언하고 있는 김삼웅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공동대표  ⓒ 김경준 


조선의열단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주최하고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의 주관으로 열린 이번 학술대회에는 김원웅 광복회장, 함세웅 조선의열단 100주년 기념사업 공동추진위원장, 조광 국사편찬위원장, 주진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각계 인사와 시민들이 참석해 회의장을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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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열단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 "조선의열단 100년의 역사인식"에 참석한 내외귀빈들의 모습  ⓒ 김경준 


학술대회는 학계 전문가들이 돌아가면서 김상옥, 신채호, 김창숙, 박재혁, 박차정 등 의열단원들의 생애를 재조명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그러나 이번 학술대회의 주인공은 역시 '약산 김원봉'이었다. 축사를 맡았던 이들도, 패널로 참여한 이들도 모두 김원봉이라는 이름 석 자를 프레스센터 회의장으로 소환했다. 그리고 한결같은 목소리로 역사적 평가에 걸맞는 대접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축사를 맡은 조광 국사편찬위원장은 "해방 이후 남한에서는 목숨 걸고 독립운동을 한 이들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이뤄지지 않았다"라며 "결국 이 시기의 독립운동가들은 또 다른 형태의 망명을 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들의 망명은 당대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투쟁이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김원봉의 월북을 '제2의 망명'으로 규정하면서 "자신의 땅에서 자신의 땅으로 망명을 해야만 했던 안타까운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우리는 해방 정국 당시 망명객들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그들이 수행했던 해방 이전의 반제국주의 투쟁, 독립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충분히 인정해줘야 한다. 그래야만 식민지배가 이뤄졌던 나라가 되찾아야 할 정통성을 확립할 수 있다."

민화협 김홍걸 의장은 한 발 더 나아가 "김원봉 선생에게 월북자라는 낙인이 찍혀 서훈이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을 보면서, 친일파에 의해 왜곡된 현대사를 방치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라며 "거꾸로 우리는 일본인들에게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라고 당당하게 말할 자격이 있는가"하고 반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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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언하고 있는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  ⓒ 김경준 


김원봉 서훈하려면 특별법 제정해야

의열단 의거의 시작과 끝에는 항상 의백(단장) 김원봉이 있었다. 무수히 많은 의열단원들이 맏형 김원봉의 지시에 군말없이 권총 한 자루와 폭탄을 가슴에 품고 사선을 넘었다.

시간이 흐르며 의열단원들이 하나둘 명예를 회복하고 있지만, 김원봉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거론 자체가 금기시되는 인물이다. 그래서 의열단 100주년을 맞아 경축의 장이어야 할 이번 학술대회 현장은 여전히 '독립운동가를 독립운동가라 부르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성토의 장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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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는 참석자들  ⓒ 김경준 


이런 상황에서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가 발표한 '김원봉 서훈을 위한 대안'은 참석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이 교수는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한 독립운동가들에게 서훈할 수 없다는 조항은 대통령령이나 국가법률로 정한 것이 아니라 독립유공자공적심사위원회 심사기준(내규)에만 명시되어 있기에, 해당 조항을 제거한다면 법적으로 서훈이 가능하다"라며 이에 따라 "국민적 합의를 거쳐 특별법을 제정하거나 특별조항을 신설해 김원봉에게 서훈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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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봉 서훈의 쟁점과 대안에 대해 발표하는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 김경준 


다만 그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렇게 할 경우 김원봉 뿐만 아니라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한) 항일빨치산들이 다 허용되는데 이것을 정부가 감당할 수 있을까. 이미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김일성의 삼촌도 도로 빼라고 하는 마당에 과연 가능할까."

이 교수는 만약 정부가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서훈을 추진한다면 "대한민국의 포용력을 확장하고 정통성을 확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훈장의 이름을 기존의 '건국훈장'이 아닌 '독립훈장', '광복훈장', '항일훈장' 등 독립운동 공적을 드러내는 이름으로 바꿔서 수여하자는 주장을 펼쳐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이러한 대안들도 지금의 현실에선 모두 난망하기만 하다. 이미 올해 2월, 국가보훈처 자문기구로 출범한 '국민중심 보훈혁신위원회'가 "남에서도 북에서도 사상이나 정치적 이유로 독립운동 공적을 온전히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독립운동가들을 적극 독립유공자로 서훈한다"는 등의 권고안을 만들어 보훈처에 김원봉의 서훈을 권고했으나, 보훈처가 끝내 외면했기 때문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지난 8월에 취임한 박삼득 국가보훈처장은 "김원봉의 독립유공자 서훈은 불가하다"라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김원봉에 대한 서훈 가능성이 있다"라던 피우진 전 보훈처장의 입장보다도 더 후퇴한 모양새다. 실제로 이번 학술대회 행사장에 국가보훈처장은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독립운동가를 독립운동가라고 부르자

"바로 100년 전 3.1혁명의 결과, 옥동자로 태어난 임시정부와 그해 11월 만주 지린에서 단원 13명에 의해서 창립된 의열단은 크고 작은 의열투쟁을 통해 민족의 정통성, 민족의 무장투쟁역량을 보여줬다. 과거 일제강점기 35년 동안 의열단이라는 단체가 없었다면 우리 독립운동사는 얼마나 건조했을 것인가. 그런 걸 생각할 때, 우리 의열단은 우리 역사에 정사(正史)로 기록되어야 한다."

의열단의 역사적 위상에 대한 김삼웅 공동대표의 평가다. 실제로 올해 의열단 창립 100주년을 맞아 언론과 학계를 중심으로 의열단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김원봉에 대한 홀대에서 보여지듯이, 정작 선행되어야 할 과제들에 대해서는 외면한 채 우리 모두 눈 가리고 아웅만 하고 있는 꼴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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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산 김원봉 (1898~1958)  ⓒ 위키백과


의열단 단장, 조선의용대 총대장, 한국광복군 부사령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장 등을 역임하며 늘 독립운동의 최전선에 서 있던 그 남자, 약산 김원봉. 그에게 역사적 위상에 걸맞는 명예를 되찾아줘야 하지 않을까?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였던 반 고흐는 "위대한 일은 분명한 의지를 갖고 있을 때 이룰 수 있다. 결코 우연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의열단 100년, 이제 우리 역시 김원봉과 의열단의 명예회복이라는 분명한 의지를 가져야 할 때다. 

김경준 기자(kia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