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시, 2023년까지 건립 추진에 “사실상 박시춘 박물관 아니냐”
지역 문화예술인들 강력 반대
市 “시민의 가요체험 관람 공간”
경남 밀양이 밀양가요박물관(가칭) 건립을 놓고 때 아닌 논란이 일고 있다. 밀양시가 짓겠다고 한 밀양가요박물관이 밀양 출신의 작곡가 박시춘(1913∼1996)을 기리려는 목적이 아니냐며 일부 시민단체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어서다.
박시춘은 일제강점기부터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시기 유행가 3000여 곡을 지었다. ‘애수의 소야곡’ ‘감격시대’ ‘비단장사 왕서방’ ‘전선야곡’ ‘이별의 부산정거장’ ‘굳세어라 금순아’ ‘신라의 달밤’ ‘봄날은 간다’ ‘럭키 서울’ ‘낭랑 18세’ ‘세상은 요지경’ 등은 그야말로 당대를 풍미했다. 많은 사람들이 술집에서 노래방에서 그의 노래를 불렀다. 그는 한국 가요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2년 보관(寶冠)문화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태평양전쟁에서 일제의 패색이 짙어진 1943년 이후 학도병 참여를 권유하는 ‘아들의 혈서’ ‘결사대의 아내’ 같은 노래를 짓기도 했다.
이 때문에 밀양가요박물관이 ‘박시춘 기념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자 밀양시는 박시춘 개인을 추모하는 공간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다.
시는 최근 ‘박시춘 가요박물관이라고 일부 언론과 시의원이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시는 보도자료에서 “밀양아리랑의 고장에 가요박물관을 세워 노래를 사랑하고 흥이 많은 밀양시민들이 우리 가요를 체험하고 관람하는 공간을 만들려고 한다”고 밝혔다. 타당성 용역을 거쳐 자문위원회를 만든 뒤 시민의 중지를 모아 지역 명소로 가요박물관을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가요박물관 건립 예산은 시비와 도비 30억 원이며, 올해 착공해 2023년 완공할 예정이다. 장소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2001년 시가 복원한 박시춘 옛집이 있는 영남루 주변이 유력하다.
시 관계자는 10일 “가요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학습과 체험을 골고루 할 수 있는 장소가 될 것”이라며 “밀양은 박시춘뿐만 아니라 정풍송 남백송 박정웅 은방울자매 같은 많은 예능인을 길러냈다”고 말했다. 또 대중가요와 함께 지역 문화예술을 망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강조했다. 시 홈페이지 ‘시민의 소리’에는 ‘친일의 잘못은 교훈으로 삼고 작곡가로서의 업적은 기리는 방향에서 가요박물관 건립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올라왔다.
지역 문화예술인들은 ‘밀양가요박물관저지 시민연합’(회장 김태성)을 만들어 강력한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장창걸 시민연합 부회장(극단 밀양대표)은 이날 “가요박물관 제안이 처음 나온 2015년부터 박시춘 유품 전시와 기념이 목적이었다. 반대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대중 음악가 몇 사람을 끼워 넣어 짬뽕을 만들려 한다”고 지적했다.
시가 가요박물관에 넣겠다고 하는 밀양아리랑 백중놀이 감내게줄당기기 등은 어색할 뿐 아니라 이미 각기 전시관 전수관 상설공연장이 마련돼 있다는 것. 이들은 가요박물관 건립백지화를 위해 전국 40여 개 독립운동 관련 및 시민단체와 함께 이달 하순 합동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다. 또 박물관 건립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손정태 밀양문화원장 사퇴’, ‘박시춘 생가 일체 철거’ 등을 요구하며 9일 오후부터 밀양시 삼문동 시립도서관 앞에서 1인 시위를 재개했다.
사단법인 항일독립선열 선양단체연합(회장 함세웅)은 “독립운동 성지인 밀양에서 친일파를 선양해서는 안 된다”며 박시춘 생가와 흉상, 노래비 철거를 요청하는 공문을 지난주 경남도와 밀양시에 보냈다. 가요박물관 건립 논란은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밀양 출신 좌파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1898∼1958) 서훈(敍勳) 논의와 더불어 지역 관심사로 떠올랐다.
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