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의원으로도 활약했던 김 회장은 친일파 명단을 발표하는데 앞장선 인물이다. 김 회장은
바른 역사를 알리고 역사 속에서 대한민국을 바로잡기 위한 일념으로 친일파 명단을 발표했다고
전했다. 재야로 물러난 이후엔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활동에 힘쓰고 있다. @스카이데일리
김 회장이 발표한 708인 친일파 명단은 2002년 2월 28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주요 친일 인사 708명에 관한 명단이다. 이들 명단은 1948년 대한민국 제헌국회에서 제정한 ‘반민족행위처벌법’에 근거해 작성됐다. 이 모임은 광복회와 함께 주요 인사를 심사해 명단을 공개했으며 이 가운데 692명은 광복회와 합의 하에 발표했다. 사회·문화·예술 분야에 공적이 커 친일파 규정에 논란이 많은 16명은 추후 별도로 발표했다.
“명단을 발표한 후 대한민국이 뒤집어졌죠. 당연히 절 공격하던 이들도 많았고요. 모두 승소를 거뒀지만 당시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맞느냐는 의혹 때문에 오랜 시간 법정공방을 벌이기도 했어요. 우리나라에 힘 있는 사람들 중 친일파와 그 자손들이 정말 많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기도 했죠”
김 회장은 명단을 발표 후에도 임기 내내 친일파 청산을 위해 힘썼다. 그는 임기를 끝마친 후 재야로 돌아와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를 발족해, 숨은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찾고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 몸을 던졌다. 이는 친일파 청산을 하는 과정에서 역사문제를 외면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독립운동 기념사업회를 발족하며 독립운동의 역사를 찬찬히 살펴봤는데 이들의 희생이 눈물겨우면서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 너무 마음 아팠어요. 특히 여성독립가들의 행적은 남아있는 게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우리나라에서 여성독립운동가라고 하면 ‘유관순 누나’만 떠올리잖아요. 하지만 유관순 열사 외에도 광복군에서 대적심리공작을 수행한 김정숙 열사, 최초로 외국에 나가서 독립운동을 했던 김마리아 열사, 여성 최초 독립의병장인 윤희순 열사 등도 있죠”
“독립운동에서 여성들은 뒷바라지만 한 것으로 알고 있는 경향이 있지만 여성들이 주도적으로 독립운동에 참가했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어요. 저는 이들의 활동이 잘 알려지지 않은 점이 안타까웠고 이들의 존재와 활동을 널리 알리고자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초상화 대행진,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추모문화제 등을 진행했어요. 가까운 미래엔 미국 백악관 앞 공원에서 항일여성운동가들의 초상화 전시를 진행하고자 해요”
국가보훈처에 등록한 독립유공자는 1만4651명에 달하지만 이중 여성은 292명으로 전체의 2% 수준이다. 그만큼 알려지지 않은 여성독립운동가가 많다는 이야기다. 이에 김 회장은 오늘도 이들의 공로를 세상에 알리고 인정받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치인이라면 한 번 내뱉은 말 끝까지 지켜야…정직·신뢰 강조한 김희선 회장
▲ 김 회장은 정치인이라면 국민과 한 약속은 끝까지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의원이란 자리도
국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자리인 만큼, 공약을 함부로 어겨선 안 된다고 전했다.김 회장은 국회의원
당시 동대문구민들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동대문 사무실에 머물고 있다. @스카이데일리
올해도 김 회장은 동대문의 사무실에 머물고 있다. 그가 국회의원 활동을 할 때도 재야에서 활동할 때도 거처는 항상 동대문 사무실이었다. 동대문에 위치한 허름한 사무실이었지만 그는 사람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23년째 이곳을 떠나지 않고 있다. 김 회장은 정치인이라면 국민과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설령 임기가 끝난 후에도 약속은 꼭 지켜야 하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의원 선거에 나설 때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한 어른들께선 비례대표로 나갈 것을 추천했어요. 하지만 저는 지역구로 나가겠다고 했죠. 그렇게 동대문으로 와서 지역구민들에게 약속했어요. 제가 눈을 감을 때까지 이곳을 떠나지 않고 여러분들과 함께하겠다고요. 저는 정치인이 선거에 나설 때 내뱉은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 약속을 지금까지 실천하고 있는 셈이죠. 국회의원직을 마친 후에는 이곳을 상담소로 이용하기도 했고 지금은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 사무실로 이용하고 있죠. 저는 앞으로도 이곳을 떠날 생각이 없어요”
정치인이라면 내뱉은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한다고 강조한 그는 낮은 곳에서 국민을 위해 힘쓰던 정치인이었다. 2009년 노인들의 의치에 건강보험이 적용될 수 있도록 하자는 국회청원서를 제출해 오늘날 임플란트 보험의 토대를 닦기도 했고 미아 찾기 관련 법안과 재래시장 복지향상에도 힘을 보탠 게 바로 김 회장이다. 김 회장은 자신이 세운 업적을 이야기하는 것에 멋쩍어하면서도 그동안의 활동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고 전했다.
“요즘 여성의 ‘미투’운동이 한창 불붙고 있는데 그 시초 격이라 볼 수 있는 ‘한국여성의 전화’를 만든 게 바로 저에요. 이를 통해 당시 많은 여성들이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죠. 전화가 널리 보급되지도 않은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전화가 왔던 기억이 나요”
“제 업적을 말하는 게 자기 자랑하는 것 같아 쑥스럽지만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역사를 살펴보다 보니 제가 했던 일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어요. 지금까지 숨겨온 말과 행동이 많지만 더 늦기 전에 알리며 기록으로 남겨놓고 싶은 욕심이 든 셈이죠”
▲ 김 회장은 여성인권 향상과 여성운동에 앞장선 인물이기도 하다. 한국여성의 전화를 만든 인물도
바로 김 회장이다. 이밖에도 김 회장은 노인과 어린이 등 사회의 약자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스카이데일리
70년이 넘는 일생을 살아온 김 회장의 이야기는 한 번의 기사로 담기엔 다소 힘든 수준이었다. 인터넷 검색 한 번으로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그는 순탄치 않은 인생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정직과 역사를 강조했다. 그는 진실은 언제가는 밝혀지기 때문에 거짓 없는 정직함으로 인생과 부딪쳐야 한다는 것이다.
“제 일생으로도 경험했지만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져요. 순간의 필요에 의한 거짓은 먼 훗날이라도 합당한 재판을 받기 마련이죠. 청년들은 그 역사를 보고 진보한 역사를 그려낼 줄도 알아야 하죠. 따라서 전 스스로도 정직하게 살며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모범이 되고자 해요. 아울러 옳은 역사를 알리기 위해 숨겨진 진실과 수많은 여성독립운동가들의 행적을 밝혀 후손들에게 바른 길을 인도하고 싶은 게 소망이에요”
강주현 기자(jhkang@sky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