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마음’
물새 발톱은 바다를 할퀴고
바다는 바람에 입김을 분다.
여기 바다의 은총이 잠자고 있다.
흰돛은 바다를 칼질하고
바다는 하늘을 간질러본다.
여기 바다의 아량이 간직여 있다.
낡은 그물은 바다를 얽고
바다는 대륙을 푸른 보로 싼다.
여기 바다의 음모가 서리어 있다.
- 이육사
일제강점기 민족시인 이육사(1904~1944) 시 ‘바다의 마음’이다. 이 시에서 ‘바다’는 엄마의 마음이 아닌 ‘일제’를 비유해 이들의 음흉한 의도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12월, 이육사의 ‘바다의 마음’ 친필 원고가 문화재가 됐다. 이육사의 형 이원기의 자손이 소유했다가 문화재청에 기증했다. 등록문화재 제738호로 지정된 시 ‘바다의 마음’은 문학사적으로 매우 중요하고 희귀하다고 평가받는다.
문화재청은 이번 <문화재에 깃든 100년 전 그날> 전시에서 처음으로 시민들에게 ‘편복’과 함께 이육사 친필 원고 2편을 공개했다. 이 외에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기록들을 모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특별전시로 선보인다.
지난 19일, 문화재청은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기념한 특별전 <문화재에 깃든 100년 전 그날> 개막식을 열었다. 문화재청과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주최하고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주관한 이 전시는 3.1운동에서 표출된 민족의 열망이 자주독립으로 이어진 역사를 항일문화재를 통해 알리고자 열었다.
또한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므로 기념하는 전시의 성격을 띤다. 특별전은 2월 19일부터 4월 21일까지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제10, 12옥사에서 진행된다.
이육사 친필 원고 외에도 최초 공개인 기록들이 여럿 있다. 조선 말기 우국지사 매천 황현의 유물들이 그렇다. 경술국치에 항거한 황현의 의지를 담은 ‘절명시’, 황현 친필 유묵 ‘사해형제’, 한시 ‘대월헌절필첩’, 신문 자료들을 모은 ‘수택존언’ 등이 최초로 대중에 공개됐다.
만해 한용운의 시 ‘매천선생’도 처음으로 선보였다. ‘매천선생’은 한용운이 매천 황현의 순국에 감동해 친필로 쓴 추모시이다. 이 시 구절에는 “의리로써 나라의 은혜를 영원히 갚으시니, 한 번 죽음은 역사의 영원한 꽃으로 피어나네”라는 문구가 적혀 있어 관람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전시 <문화재에 깃든 100년 전 그날>은 세 개 주제들로 이루어져 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10옥사는 ‘3·1운동, 독립의 희망을 피우다’, 12옥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민족의 희망이 되다’, ‘광복 환국’ 주제로 꾸몄다.
먼저, ‘3·1운동, 독립의 희망을 피우다’ 주제를 다룬 전시관은 3·1운동과 관련된 기록들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특히 돋보이는 것은 등록문화재 제730호 ‘일제 주요 감시대상 인물카드’와 그 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 수감자들의 활동 상황과 북한 지역 3·1운동 수감자들의 수감 기록 카드들이다.
일제 주요 감시대상 인물카드는 당시 일제가 주요 감시대상 4,857명 신상을 카드 형태로 정리한 기록물이다. 이 안에는 윤봉길, 유관순, 김마리아, 안창호 등에 대한 정보들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로부터 감시당했던 흔적들이라는 점에서 당시 상황이 얼마나 잔혹했는지 알 수 있다.
여성 수감자들의 수형 기록 카드에는 유관순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의 신상이 적혀 있다. 여성들의 독립운동에 대해서는 크게 주목 받지 못해왔다. 독립운동 사실에 대한 자료들이 많이 부족하고 전쟁 등으로 소실되거나 후손들이 살아남기 위해 일부러 자료들을 없애 현재 남아 있는 자료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전시로 독립운동에서 여성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알려준다.
전시는 북한 지역 3·1운동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문화재청은 북한지역 3·1운동으로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된 인물들 중 233명의 수형기록카드를 현재까지 발굴했다. 이는 3·1운동 시 피체되어 옥고를 겪은 사람들 중 수형카드가 발굴된 1,014명 중 약 30%에 해당한다. 결코 적지 않은 수치다. 3·1운동이 한반도 전역에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켰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시민 이인혜 씨는 “북한 지역에서도 서대문형무소로 오는 줄 몰랐다. 온 지역과 사람들이 하나 되어 만세를 외쳤던 날이 100년 전이라고 하니 참 가슴 뭉클하면서 감사한 마음이 든다”라고 전했다.
이 외에도 지역별로 나눈 1,000여 명의 수형 기록 카드들, 전국 각지에서 선포된 독립선언서, 3·1운동 때 쓰인 태극기 등 관련 유물들과 기록들을 살펴볼 수 있다.
서대문형무소 12옥사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민족의 희망이 되다’ 주제 전시는 3·1운동을 통해 얻은 동력으로 만들어진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인물들에 관련된 유물들을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조소앙 선생이 ‘삼균주의(三均主義)’를 바탕으로 독립운동과 건국 방향을 정리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국강령 초안’을 만날 수 있다. 이봉창 의사 관련 유물들도 세상에 나왔다. 일본 국왕에게 수류탄 의거를 단행했던 이봉창 의사의 선서문과 김구 선생에게 자금을 요청한 친필 편지, 봉투 등이 전시됐다. 독립을 위해 군사 훈련했던 한국 광복군 자료들도 비치됐다.
마지막으로 ‘광복 환국’ 주제의 전시에선 광복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인사들의 유물들을 확인할 수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의 필첩인 ‘재유기념첩’은 8.15 광복을 맞아 한반도에 귀국하기 전날(11월 4일) 밤에 조국 독립의 감회를 필적으로 남긴 기념첩이다. 전시에는 이시영, 김구, 조소앙, 신익회, 김성숙 주요 인사 5명의 문구들이 적혀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환국기념 서명포를 통해 광복의 기쁨을 표현한 인사들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2옥사 13번 방에는 김구 선생 관련 유물들이 전시됐다. 이곳에는 애국가의 변천과정을 알 수 있는 등록문화재 제576호 한중영문중국판 한인애국가 악보와 해방 이후 처음 발행된 백범 일지 초판본, 김구 선생 서거 당시 책상에 있던 두루마리 글씨 중 하나인 등록문화재 제442-2호 유묵 ‘신기독’과 유묵 ‘사무사’가 관람객들을 맞이했다.
13번 방에 김구 선생 유물들을 전시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다. 광복 이후 김구 선생이 귀국하고 나서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했을 때 이곳 13번 방을 둘러봤다고 한다. 옥사는 다르지만, 김구 선생이 수감됐던 방도 13번이었기 때문이라고.
문화재청 정재숙 청장은 “항일운동 유물들을 오랫동안 소중히 소장하고 기증한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감사드린다”라면서 “널리 알려진 유공자들도 많지만 대부분이 민초였다. 여성과 어린이들도 많았다. 서대문형무소에는 수많은 보통 사람들이 수감됐다. 이들이 3·1운동의 주역이라고 생각한다. 전시를 통해 항일 독립의 역사를 문화재를 통해 되새겨보고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부분들을 알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라고 언급했다.
한편, 오는 22일에는 이번 특별전과 연관된 학술심포지엄이 개최된다. 오전 9시 30분에 국립문화재연구소와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공동으로 ‘항일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방안’이라는 주제로 열린다. 항일문화유산의 역사적 의미를 살릴 수 있는 보존과 활용 방안 논의를 위해 총 6편의 발표가 계획돼 있다.
그 밖에도 ‘교양강좌 3·1운동의 공간과 시간(주1회, 3월 말~4월 말)’, ‘학예사가 들려주는 특별전 해설 안내(주1회, 3~4월)’, ‘역사탐방 임시정부 사람과 사람(격주 총 4회)’ 등 특별전 기간에 관람객들을 위한 여러 가지 행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3월 1일이 머지않았다. 3.1운동과 대한 독립을 위해 수고한 분들을 기억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이 중요하지 않을까. 100년 전 그날을 기록으로 남긴 선조들을 잊지 않기 위해 더더욱.
- 시민기자 김진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