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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오마이뉴스]임시정부 최초로 좌우연합정부 수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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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3-01 17:38 조회7,24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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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100년의 혈사와 통사 27회] 임시정부가 1919년에 수립된 이래 좌우 정파의 지도급 인사들이 망라하여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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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 하비로 청사 모습이다.  2층 외벽에 태극기가 걸려있다. 당시부터 대한민국의 상징은 태극기였다. 

ⓒ 오마이TV 


임시정부는 미일전쟁이 발발하자 즉각 일본에 선전을 포고하였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미일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임시정부는 일본과 싸울 수 있는 전력이 크게 부족하였다. 어렵게 창설한 광복군은 중국측의 '한국광복군 9개준승'에 묶여 있었고, 내부적으로는 김원봉 중심의 조선의용대와 양분된 상태이었다. 

광복군이 중국 장제스 총통으로부터 조직허락을 받은지 1년 6개월이 지나도록 지휘권 문제와 운영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귀중한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긍정적인 조짐도 보였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지 이틀 후인 12월 10일 좌파 진영인 조선민족혁명당이 제6차 대표자대회에서 내외 정세의 변화 이유를 들어 임시정부에 참여할 뜻을 천명하였다.

조선민족혁명당은 2차대전의 발발과 함께 폴란드ㆍ네덜란드ㆍ프랑스 등의 반파시스트 망명정부가 수립되고 연합국이 그들을 원조하면서 한국의 임시정부도 승인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내린 결정이었다. 

그동안 일관되게 임시정부를 부정해온 조선민족해방동맹도 정세의 변화로 임시정부의 국제적 위상이 제고되면서 임시정부 옹호를 선언하고 나섰다. 그동안 이념ㆍ노선의 차이로 분열되었던 좌우 독립운동 진영이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결속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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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이 1920년대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태극기다. 등록문화재 제 395-1호.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942년에 실현된 독립군 진영의 군사통일은 황하 이남의 군사력이 모두 광복군으로 통합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군사통합은 곧 정치통합으로 이어지고, 정치통합은 강력한 대일항전의 전력증강으로 발전해야 했다. 그러나 전시체제의 임시정부에서는 노선갈등과 사소한 문제로 극심한 갈등양상을 빚게 되었다. 

임시정부가 분쟁에 휩쌓이면서 정기 의정원회의가 공전하고 있을 때 11월 27일 '카이로선언'이 발표되었다. 한국의 독립을 국제적으로 보장한다는 최초의, 전후문제에 주도권을 쥐고 있는 중ㆍ미ㆍ영 3국 수뇌의 이 선언이 전해지면서 임시정부는 이를 즉각 환영하는 한편 '적당한 절차를 거쳐'라는 단서에 격앙하면서 의혹을 감추지 못하였다.

임시정부 요인들이 격앙하게 된 데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세계의 저명한 언론들은 미영의 주요지도자들이 한국의 독립에 대해 국제관리방식을 도입한다는 보도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미국의 『더 선(The Sun)』은 런던발 통신으로 영국외상과 미국 대통령이 한국이 독립하기 전에 잠시 '국제감호(國際監護)'를 하기로 했다는 보도도 전해졌다. 

이에 대해 임시정부는 외무부장 조소앙을 통해 그 부당성을 공박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한편 김구가 장개석 총통을 직접 만나 전후 한국문제의 처리에 관해 논의하도록 하였다. 

7월 26일 김구는 조소앙과 선전부장 김규식, 광복군사령관 이청천, 부사령관 김원봉을 대동하고 장 총통과 영수회담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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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선 김구 선생과 김원봉 장군 1941년 3월 1일, 3.1절 22주년 기념식. 김구 선생과 조소앙 선생, 신익희 선생, 김원봉 장군이 함께 선 사진이다. 매우 귀한 자료다. ⓒ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


카이로선언은 그동안 분열과 대립을 거듭해온 독립운동계에 자극제가 되었다. 공전을 거듭하던 임시정부 의정원회의가 정파간에 타협의 분위로 돌아선 것도 정세의 변화에 힘 입은 바 컸다. 

각 정파는 1944년 4월 29일 제26차 의정원회의를 열어 '임시헌장(헌법)'을 개정하여 4월 21일 이를 통과시켰다. '임시헌장'에서도 주석의 권한을 강화하여 비상시국에 대처하도록 하면서 김구를 주석에 연임시켰다. 행정부는 국무위원회와 행정연락회로 이원화하였다. 

국무위원회에는 독립운동의 영수들과 각 정당의 대표자들을 안배하여 정책결정의 기능을 하도록 하고, 정책집행과 행정사무는 주석이 임면하는 각 부장들이 맡도록 하였다. 정쟁을 완화하기 위해 마련한 타협의 소산이었다. 

또 부주석제를 신설하여 외교분야에 능력을 갖춘 조선민족혁명당 위원장 김규식을 뽑고 역시 같은 당 핵심인 김원봉을 군무부장에 선임하였다. 정파간의 안배가 크게 작용한 인선이었다. 이 때에 선임된 임시정부 요인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주석 - 김구
부주석 - 김규식

국무위원(14명)
이시영, 조성환, 황학수, 조완구, 차리석, 장건상, 박찬익, 조소앙, 김붕준, 성주식, 유림, 김성숙, 김원봉, 안훈.

임시정부가 1919년에 수립된 이래 좌우 정파의 지도급 인사들이 망라하여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한국독립당, 조선민족혁명당, 해방동맹, 아나키스트들까지 참여한 것이다.

좌우합작 정부수립에 성공한 임시정부는 4월 24일 4대정당 연명으로 '각 정당 옹호 제36차 회의선언'이란 제목의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친애하는 동지, 동포들!

최근 개막된 우리 한민족 독립운동의 최고권력기관인 임시의정원 제36차 임시의회는 각 당파 인사가 화합하고 단결하는 분위기에서 임시약헌을 개정하고 정부주석 및 국무위원을 선출한 다음 원만하게 폐원하였다. 

이번 임시의회 중에 개정한 임시헌장은 우리 민족의 장래 건국이상에 적합할 뿐만 아니라 또한 목전의 우리 독립운동의 실제 요구에도 적합한 극히 보귀한 혁명문헌이다. 동시에 이번 정부의 인선은 국내외의 성망있는 최고의 혁명선배와 각 혁명당의 최고권위 있는 대표자를 망라한 것이다. 

이번 의회는 개헌과 인선상에서 실로 위대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것은 우리 민족독립운동 선상에 진실로 경축할 만한 일이다. 

여기에 우리 4당은 만감의 열정으로 이번 의회의 위대한 성공을 경축하는 동시에 우리는 공동의 의견을 정중히 선포한다. 

첫째, 우리 4당은 이번 개정한 임시헌장을 전민족 행동의 최고준승을 위하여 솔선하여 준수, 봉행할 것을 확인한다. 

둘째, 우리 4당은 신임 정부주석 김구 선생 및 전체 국무위원은 우리 민족의 최고 영도자로서 우리는 당연히 솔선하여 성심 옹호할 것을 확신한다.

셋째, 우리 4당은 임시정부 기치하에 전체 민족을 단결ㆍ동원하여 일본제국주의자에게 대항하여 최후의 결전을 전개할 것을 결심한다. 

넷째, 우리 4당은 중ㆍ영ㆍ미ㆍ소 등 동맹국 및 전세계 일체의 정의인사들의 동정과 원조를 얻고 더욱 최단시간내에 임시정부의 승인과 유력한 국제원조를 얻기 위하여 적극 노력한다.(후략)

한국독립당ㆍ조선민족혁명당ㆍ조선민족해방동맹ㆍ조선무정부주의자 총연맹.

김구는 민족해방을 목전에 두고 자신을 줄기차게 비판하는 좌파 계열을 꾸준하게 설득하여 연합정부를 수립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의 지도력과 위상은 좌우 세력을 망라하여 구심이 되고, 명실상부 독립운동계의 정상이 되었다. 

김구는 조각에 들어가 각 부장을 인선하여 국무회의의 인준을 받았다. 각료는 내무부장 신익희, 외무부장 조소앙, 군무부장 김원봉, 법부부장 최동오, 재무부장 조완구, 선전부장 엄항섭, 문화부장 최석순이었다. 

김구는 이들의 선서를 받고 취임식의 치사에서 "본주석은 여러분이 모두 연부 역강하고 정명능간(精明能幹) 한 준재로서 반드시 맡은 바 임부를 수행하여 내외의 기대를 저바리지 않을 것을 확신한다." 면서 "혁명적 기백과 분투적 정신을 발휘하여 각기 그 직책을 다하라."고 격려하였다.

임시정부의 강화는 내외 동포들로부터 크게 환영을 받았다. 재미 동포들이 앞다투어 축전을 보내고 각지에서 경축식이 거행되었다. 중국정부와 조야에서도 우정어린 축하의사를 표시하였다. 

중국국민당 조직부장 주가화는 임시정부 주석ㆍ부주석과 국무위원ㆍ각부장들을 초청하여 축하연을 베풀고, 입법원원장 손과도 임시정부의 신임 요원들에게 환영대회를 열어주었다. 또 중국공산당 대표 동필우와 임조항이 축하연을 베푼데 이어 중국 국민당의 오철성ㆍ진과부ㆍ양한조 등 지도자들도 축하연을 열고 임시정부의 대동단합을 축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