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 기념사업회 <천고> 창간 100돌 기념호…복간도 추진
100년 전 단재가 쓴 봉오동 전투 등 기사 담아
단재 신채호(1880~1936) 선생이 중국 베이징에서 발행한 한문 잡지 <천고>가 100년
만에 부활했다.
사단법인 단재 신채호 선생기념사업회는 7일 <천고> 창간 100돌을 맞아 기념호를 발행
했다. 단재 선생이 1921년 1월 <천고>를 발행한 지 꼭 100년 만이다.
김하돈 단재 신채호 선생기념사업회 이사는 “<천고>는 단재 선생의 독립운동 의지, 당대
독립운동 활약상 등을 담은 잡지 형태의 독립운동 역사 기록”이라면서 “창간 100돌을
맞아 기념호를 냈으며, 앞으로 선생이 추구했던 발행 정신을 좇아 <천고>를 복간하는
것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창간 기념호에는 단재가 100년 전 창간호 등에 썼던 기사도 다시 실었다. 단재는
창간호에 ‘진공’이란 필명으로 쓴 ‘조선독립과 동양평화’에서 “금일 동양평화를
말하려면 조선의 독립만 한 것이 없다. 조선이 독립하면 일본은 방자하게 탐욕스러운
데 이르지 않게 된다”고 했다. 2호에선 봉오동 전투, 노두구 전투 등 서간도와 북간도의
독립운동을 소개했다. 3호에서 ‘대궁’이란 이름으로 쓴 기사에서 3·1 운동을 ‘우리가
죽음에서 삶으로 가게 된 날’이라고 규정했다. 단재는 <천고>에서 진공·대궁·지신 등
다양한 필명으로 대부분의 기사를 손수 썼다.
창간 기념호에는 단재의 명문 ‘조선혁명선언’ 전문과 이황휘 블라디보스토크 <한인
일보> 이사 등이 전한 국외 소식, 맹문재·임동확·정양 시인 등의 추모시도 실렸다.
창간 기념호에는 단재의 유년 시절, 성균관 재학 시절, 고향 청주에서 ‘문동학교’·
‘산동학교’를 세워 벌이던 애국 계몽 교육 운동,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와 중국 상하이·
베이징 국외 활동과 순국 과정 등 생애를 소개했다.
아울러 지난해 10월 진행한 단재 신채호 유튜브 특강도 소개했다. 특히 단재 선생의
며느리 이덕남 여사가 단재 후손으로 사는 삶을 언급한 부분이 눈길을 끌었다.
이 여사는 “‘조선혁명선언’ 때문에 1970년대 유신정권 때 빨갱이 자식이라고 쫓겨
다녔다. 지금도 낭성(단재 묘소가 있는 고향)가는 길 공군사관학교 부근을 지날 때 떨
린다”고 밝혔다. 이 여사는 “정치권 등은 순국선열의 날에 묵념 한 번 할 게 아니라
제자리 잡지 못한 것들을 제자리 잡게 해야 한다. 국적을 회복하지 못한 32만 독립
운동가들의 국적을 회복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사진 사단법인 단재 신채호 선생기념사업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