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고려대학교가 인촌 김성수 씨 동상 철거문제로 시끌벅적하다. 학생들과 시민단체 등이 철거를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창업주인 김 씨는 기업가이자 교육가, 언론인, 정치가 등으로 활발히 활동하며 광복 후에는 부통령까지 지냈던 인물이다. 하지만 최근 그의 친일반민족행위가 알려졌고 결국 1962년 받은 건국공로훈장 복장(현재 대통령장·2등급)이 취소됐다.
2015년 ‘친일파 기념물·기념관 조성 금지 법안’ 폐기 도로명 주소 개명…주소 사용자 5분의 1 이상 동의 시 신청 가능
대법원은 지난해 4월 인촌기념회 등이 당시 행정자치부 장관을 상대로 낸 친일반민족행위 결정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인촌의 친일행적을 인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달 13일 국무회의에서는 인촌이 1962년에 받은 건국공로훈장 복장 취소를 의결하며 56년 만에 서훈을 박탈했다.
인촌 김성수 서훈 박탈 생가 등 현충시설 해제
최근 친일반민족행위 판명으로 국가 서훈이 박탈된 인촌 김성수 씨의 생가, 고택 등 5개 기념물이 현충시설 지위를 잃었다. 현충시설 해지는 인촌의 서훈 박탈에 따른 후속조치다.
국가보훈처가 현충시설 지휘를 해제한 대상은 고려대학교와 전북 고창 새마을 공원에 위치한 동상 2개, 종로구 계동의 고택, 인촌의 숙소터, 고창의 인촌 생가 3곳 등 총 5곳이다.
현충시설은 국가유공자의 공훈과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건축물, 조형물, 사적지 등으로 국가보훈처장이 지정한다.
국가보훈처는 지난달 열렸던 현충시설 해제 심의위원회 결과에 따라 인촌 기념물이 위치한 서울 성북구와 종로구, 전북 고창을 관할하는 서울북부보훈지청과 전북서부보훈지청에 지난 9일 관련 사실을 통보했다.
각 지청은 기념물을 관리하는 고려중앙학교와 사단법인 인촌기념회, 고창군에 해지 사실 알리고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안내 팻말 제거 권고사항을 담은 공문을 발송할 예정이다.
“동상 폐기하라”“기념관· 인촌로 명칭 변경하라”
독립단체 연합회인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이하 항단연)는 지난 14일 “서훈 박탈에 따른 현충시설 해지는 처음 있는 일”이라며 “이에 따라 당연히 동상 등 기념물을 철거해야 한다. 고려중앙학원과 인촌기념회에서 자진 철거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이어 “서훈 박탈이 한 달이 지났으나 인터넷 주요 포털에서도 김성수 및 김성수 선생 옛집을 검색하면 건국훈장, 현충시설로 기록돼 있다”라며 “종로구, 고창군, 인터넷 주요 포털 등에도 관련 내용을 삭제할 것을 요구하여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요서울이 추가로 확인한 결과 인터넷상 지식백과 인물정보 등 일부에는 여전히 ‘서훈 취소’ ‘친일반민족행위자’ 등에 대한 내용이 수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고려대 총학생회, 독립유공자 및 유족, 항단연은 이미 지난 6일 보도자료를 통해 “고려대 서울캠퍼스 중앙광장 한 가운데 설립된 인촌 동상을 철거하고 인촌기념관의 명칭을 변경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현재 인촌 동상은 서울대공원과 고려대에 설치돼 있다. 항단연에 따르면 서울대공원 내 동상은 서울시에서 폐기 심의 절차를 밟고 있다. 하지만 고려대 내 동상에 대해서는 폐기 계획 등 알려진 것이 없다.
고려대 총학생회는 “사회의 정의를 위해 앞장서 온 본 학교 내부에 인촌 김성수의 동상 혹은 기념물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고려대학교가 친일사학이라는 오명을 벗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기 위해서는 그간 존재해 왔던 학내의 친일 적폐를 청산하는 것 뿐”이라고 밝혔다.
항단연은 고려대 외부에 위치한 ‘인촌로’ 폐지와 인촌 생가 및 고택 등 시·도 기념물 해제도 요구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현재 성북구 인촌로 도로명 주소는 2011년 행정안전부의 도로명주소 시행규칙에 따라 그 이름을 얻었다. 전북 고창의 인촌 생가는 현충시설뿐만 아니라 전라북도 기념물로도 지정돼 있다.
이들은 “대법원 판결과 서훈 박탈이 결정됨에 따라 서울 성북구, 전북 고창군은 역사의 순리대로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인촌로 폐기와 기념물 해제 심의를 조속히 진행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항단연은 인촌기념회가 주관하는 인촌상 반납운동도 전개할 방침이다. 인촌상은 ‘인촌 김성수의 유지를 현양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졌으며 매년 정치, 경제, 교육, 언론 등 각 분야 인사들을 선정해 총 31회 128명(단체)에게 수여됐다.
사립학교 내 동상 정부·자치단체 철거 ‘한계’
인촌 김성수 동상 철거에는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 김문수 의원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달 28일 김 의원은 “자랑스러운 모교이지만 대학시절부터 가장 부끄러웠던 것이 고려대 본관 앞에 세워진 김성수 동상이었다”며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대법원 판결과 서훈까지 취소된 김성수 동상은 후배들에게 자랑스러운 ‘민족고대’라 말하기 민망하게 하는 걸림돌”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성북구 인촌로 도로명 주소 역시 같은 이유로 즉시 개정돼야 할 것”이라며 “한용운 선생님을 비롯해 목숨 바쳐 항일독립운동가들이 활동했던 유적지에 친일파의 호를 딴 도로명이 있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현재 사립학교 내에 세워진 동상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철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2015년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확정한 친일파에 대한 기념물·기념관 조성 금지 법안이 국회에 발의됐으나 끝내 폐기됐다.
하지만 도로명 주소 개명은 주소 사용자 5분의 1 이상이 동의하면 변경 신청이 가능하다. 최종 변경 동의 시에는 주민 절반 이상 동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