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99주년이던 지난 13일, 서울 지하철 안국역 지하 4층 승
강장에 붐비는 승객들 사이로 독립운동가 80인의 초상화와 어록이 눈에 들어왔
다. 조형물 등에 새겨진 독립유공자들의 이름도 빼곡했다.
백범 김구를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부터 만해 한용운, 유관순 등 3.1운동 인사에 이
르기까지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의사
를 위시로 의열단원 등 일제 고관대작들을 처단했던 무장항쟁 투사들도 즐비했다.
그런데 임시정부 마지막 군무부장, 광복군 부사령관이자 의열단장으로 일제가
가장 두려워했다는 약산 김원봉(1898~1958)의 흔적은 전무했다.
김구 주석, 김규식 부주석은 물론 약산과 함께 임정 국무위원으로 해방을 맞은 조
완구(재무부장), 조소앙(외무부장), 신익희(내무부장), 최동오(법무부장) 등 동료
임정요인들은 있어도 약산의 이름은 없었다. 일본 육군대장을 저격했던 김익상,
일제경찰 수백명과 도심 총격전을 벌인 김상옥, 동양척식회사에 폭탄을 던진 나석주
의사 등 의열단원들은 있는데 정작 그들을 지휘했던 의열단장 약산은 함께 하지
못했다. 그의 부탁으로 의열단 선언서인 '조선혁명선언'을 쓴 단재 신채호, 약산에게
민족의식을 일깨운 고모부 황상규, 죽마고우이자 의열단 동지였던 석정 윤세주,
의열단부터 임정까지 동고동락했던 운암 김성숙의 이름도 더욱 외로워 보였다.
"약산 김원봉은 고전적인 테러리스트로 냉정하고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일
본 관헌은 그에 대한 산더미 같은 조사자료를 만들어놓고 현지 어떤 한국인보다
그를 체포하려고 혈안이 돼있었다." 님 웨일즈의 '아리랑'에 나오는 독립운동가
김산(1905~1938)의 증언이다.
약산은 일제가 역대 조선 독립운동가 중 가장 높은 현상금을 걸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공겁(恐怯)'의 표상이었던 인물이다.
일제강점기 동안 그가 지도한 의열단의 의거는 종로, 부산, 밀양경찰서,조선총독부
폭파사건, 일본 왕궁 앞 도쿄 니주바시교 폭파사건 등 수도 없다. 의열단 활동 뒤
에는 민족혁명당, 조선의용대를 창설해 일제 타도를 위한 군사력 양성에 나섰고
1941년부터는 임시정부에 몸담으면서 독립운동의 단일대오 형성에 동참했다.
서울 지하철 안국역에서 시민들이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옆 스크린도어에 설치된 백범김구의 이미지와 어록이 보인다.
이런데도 왜 약산 김원봉은 안국역에 초대받지 못했을까. 3.1운동, 임시정부 100
주년을 앞두고 안국역을 독립운동테마역사로 조성한 서울시의 설명은 간단했다.
"정부가 인정한 독립운동가가 아니면 배제했다"는 것이다. 안국역에 이름을 남긴
독립운동가는 외부인사 5인을 중심으로 한 검증위원회가 국가보훈처 심사를 통과
한 독립유공자 중에서 최종 선정했다.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약산은 검증대
상에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는 올해 안국역에서 추모할 독립운동가를
추가선정할 계획이지만 약산이 대상에 오를 가능성은 희박하다.
약산을 기리는 경남 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는 지금까지 정부에 약산을 독립유공자
로 인정해달라고 3차례나 공식신청했다. 1945년 8월14일까지의 행적만 평가하는
'독립유공자예우에관한법률'에 따르면 약산이 공적을 인정받는데 문제는 없다.
그러나 '북한정권 수립에 기여한 자는 제외한다'는 국가보훈처 내부규정이 번번이
독립운동가 인정을 좌절시켰다.
약산이 1948년 봄 월북해 북한에서 국가검열상, 노동상 등을 지낸 사실이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월북 당시 남쪽은 몽양 여운형이 암살 당하는 등 백색테러가 최고
조에 이르던 시기였다. 악질 친일경찰 출신으로 수도경찰청 수사국장에 올랐던
노덕술에게 연행당하는 치욕을 당했고 1947년 8.15에 즈음해 미군정의 수배도 받기
시작했다. 북한정권 지지가 아니라 신변의 위협이 월북의 가장 큰 이유였다는 것이다.
역사학계의 약산 연구성과를 종합하면 그는 사회주의자는 아니었던 것으로 평가
된다. 민족을 최우선 가치를 두고 좌우합작을 지향한 '진보적 민족주의자'라는
가설이 우세하다. 약산이 6.25전쟁 이후에도 북쪽에서 '남북화해를 통한 중립화통일'
을 주장하다 김일성의 미움을 사 숙청당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때 약산을 소재로 한 영화 '암살', '밀정'이 흥행하면서 약산을 독립유공자로 인
정해야한다는 호소가 조명받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인 2015년 광복70주년에 "마음 속으로나마 약산 선생에게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고 싶다"고 말한 바도 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거세지는 매카시즘적
반발과 이념논쟁 때문에 유족들과 추모단체들조차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최필숙 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 사무국장은 "약산에 대한 여러 평가가 있지만 그가
누구보다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라며 "해방
이후의 논란 때문에 약산이 독립을 위해 바친 삶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서울 지하철 독립운동테마역사 안국역에 설치된 기념초형물.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있다.
장우성 기자 nevermind@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