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몰연도 및 훈격
강기덕(康基德, 1886~미상), 건국훈장 독립장(1990)
◆ 공적상세
□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강기덕 선생을 ‘2022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ㅇ 이번에 선정된 강기덕 선생은 3·1운동을 시작으로 신간회에 이르기까지 국내에서 다양한 독립운동을 했고, 광복 이후에도 남북분단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등 평생 조국을 위해 헌신하신 분이다.
□ 선생은 1886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48명 중의 한 명(학생대표, 보성법률상업학교 재학 중)으로 독립선언서를 각 학교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2차 시위(3월 5일)에서 깃발을 흔들며 군중의 선두에서 만세를 부르다 일경에 체포되어 1년 6개월 옥고를 치렀다.
ㅇ 1921년 11월 만기 출소하여 고향인 원산에서 인쇄업에 종사했으나, 1924년 3월경 원산 보광학교 3·1운동 5주년 기념 인쇄물을 제작하며 3·1운동 정신을 계승하고자 했다.
ㅇ 또한 선생은 조선농민의 참담한 현실을 강조하며 경작제도의 문제를 개선하여 농민들의 수입증진을 위한 연설을 했다는 이유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일경에 체포되어 6개월 옥고를 치렀다.
□ 출소 후 선생은 신간회* 원산지회 발기인회에 참여하여 설립준비위원과 상무위원을 맡았고, 1927년 7월 11일 신간회 원산지회 설립대회에서 간사로 선임되었다.
ㅇ 선생은 신간회 활동을 하면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대책 마련과 신문지법 중단을 촉구하였고, 소작쟁의에 관한 불량지주의 죄악 조사를 요구하는 함남기자 연맹사건에 연루되어 징역 8개월을 선고받기도 했다.
ㅇ 1929년 11월 만기 출소하여 원산지회 지회장에 선임된지 얼마 되지 않아, 원산 학생들이 일으킨 일제 반대 시위에 연루되어 1930년 2월 또다시 구속되었다가 풀려났다.
ㅇ 1931년 이후 선생은 원산노동조합 간부로서 노동조합의 재건 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1933년 또다시 징역 1년 2개월 옥고를 치렀고, 1935년 만기 출소했다.
ㅇ 광복 이후에는 신탁통치 반대 국민총동원 위원회 중앙위원을 맡아 통일정부수립을 위해 노력하였지만 안타깝게도 꿈을 실현시키지 못하였고, 6·25전쟁 중 납북되었다.
□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강기덕 선생에게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