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몰연도 및 훈격
김 갑(金 甲,1889~1933), 건국훈장 독립장(1986)
한흥교(韓興敎,1885~1967), 건국훈장 애국장(1990)
민제호(閔濟鎬,1890~1932), 건국훈장 애국장(1990)
◆ 공적상세
□ 국가보훈처(처장 박민식)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일제강점기 동제사(同濟社)에 가입한 김갑·한흥교·민제호 선생을 2022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ㅇ 동제사는 1912년 신규식 선생이 중심이 되어 상하이에서 조직된 최초의 독립운동 단체로, 상하이 한인들의 단결과 젊은 독립운동가들의 교육을 위해 박달학원을 설립하기도 했다.
□ 부산 동래에서 출생(1889년)한 김갑 선생은 1917년 5월 베이징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상하이로 건너가 동제사에 가입했다.
ㅇ 동제사의 박달학원에서 교육받고, 동제사 중견간부로 활동한 선생은 1919년 4월 상하이에서 임시의정원이 수립되자 경상도 대표 의원으로 활약했으며, 임시정부에서는 교통부 위원, 군무위원회 이사, 법제위원회 위원으로서 초기 임시정부 안정화를 위해 힘을 쏟았다.
ㅇ 1933년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租界)에 있는 광제의원에서 4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임시정부는 선생의 헌신에 보답하기 위해 국민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 부산 동래 출생(1885년)의 한흥교 선생은 1910년 오카야마 의학전문학교를 졸업, 1911년 신해혁명 참여를 위해 상하이로 건너가 본격적인 항일운동에 투신했다.
ㅇ 신해혁명 국민군 참여를 계기로 신규식 선생 등을 만나 동제사가 결성될 때부터 가입·활동했고, 항저우 의학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동제사 동지들의 의료지원을 전담했다.
ㅇ 신채호 선생과 중외통신, 신광신보 등을 간행하며 독립운동의 정당성을 알리는데도 헌신한 선생은 1927년 국내 귀국 후 만주사변이 발발하자 만주지역 의료 활동과 함께 북경, 태원 등에서 병원을 운영하며 독립운동을 후원했다. 해방 후 귀국, 1967년 노환으로 숨을 거뒀다.
□ 민제호 선생은 서울 종로에서 출생(1890년), 한성영어학교 재학 중 국권을 빼앗기자(1910년) 항일운동 참여를 결심, 1913년 상하이로 망명해 동제사에 가입한 뒤 한중우호단체인 신아동제사에서 대외 협력업무를 맡았다.
ㅇ 1919년 4월 상하이에서 열린 임시의정원에서 69명의 의원에 선출된 후 대한적십자회와 대한인거류민단 등 대중단체에 참여해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1929년까지 임시정부 대외업무를 수행하며 자금모집 등의 협력업무도 담당했다.
ㅇ 1932년 한인애국단 단원인 윤봉길 의거로 일제의 탄압이 시작되자 상하이 임시정부와 함께 항저우로 피신했지만, 곧 병을 얻어 1932년 42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 정부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김갑 선생에게 1986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한흥교 선생과 민제호 선생에게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각각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