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몰연도 및 훈격
안원규(安元奎, 1878~1947), 독립장(1995)
정원명(鄭元明, 1881~1942), 애국장(2014)
◆ 공적상세
국가보훈처(처장 박민식)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하와이 한인합성협회(韓人合成協會) 창립에 기여하고, 독립자금을 모금하는 등 독립운동을 적극 후원한 안원규·정원명 선생을 2022년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ㅇ 한인합성협회는 1907년 하와이에서 창립된 항일민족단체로, 하와이 지역 공진회, 자강회 등 한인단체를 통합하여 창립되었고, 교육사업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자금을 모아 독립운동을 적극 후원했다.
하와이 한인들에게 독립운동의 취지를 알리고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한인합성신보도 발간했다.
□ 경기도 파주에서 1877년에 태어난 안원규 선생은 1903년 하와이 두 번째 이민배인 캡틱(Coptic)호로 호놀룰루에 도착했다.
ㅇ 선생은 1907년 정미조약 이후 하와이에서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여러 단체가 통합하여 창립된 한인합성협회 부회장에 선임되어 동포들의 여러 어려움 해결과 교육에 힘썼다.
ㅇ 또한, 1909년 하와이 한인합성협회와 미 본토 공립협회의 통합으로 탄생한 ‘국민회’ 발기인으로 참여, 이후 하와이 지방총회에서 부회장으로 선출됐으며, 국민회는 선생의 노력으로 60여 곳의 지방회가 설립되었고 2,000여 명의 회원을 확보하였다.
ㅇ 특히, 선생의 주도적인 노력으로 1910년 미주 한인단체는 ‘대한인국민회’로 모두 통합되었고, 1914년 선생은 하와이 지방총회에서 총회장에 선임됐다.
ㅇ 1930년대 초반 하와이 한인사회의 내부적 갈등과 분쟁으로 조직이 와해(瓦解)되었으나, 1933년 조국독립에 힘을 보태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어 ‘하와이 대한인국민회’가 다시 조직되었고, 선생은 1935년 입법기관인 참의부의 참의원으로 활동했다.
ㅇ 이후 1944년에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위원장으로 태평양전쟁 당시 임시정부와 미국정부의 가교 역할, 한인사회의 단결을 위해 헌신했다.
ㅇ 안원규 선생은 1947년 하와이 호놀룰루 퀸병원에서 치료 중 별세하였으며, 유해는 다이야몬드헤드 기념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 1881년 평안남도 평양 출생의 정원명 선생은 기독교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고 미국인 선교사의 요리사로 고용되어 영어는 거의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었다.
ㅇ 선생은 에와(Ewa)농장에서 통역을 맡아 한인동포들의 여러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등 한인사회의 지도자 역할을 했으며, 에와친목회 회장으로 국내의 국채보상운동에도 적극 동참하였다.
ㅇ 1907년 한인합성협회가 창립되자 총회장에 선임되었고, 대한인국민회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하와이지방총회 대표원 등을 역임하면서 하와이 한인사회 통합을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ㅇ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재정적인 어려움에 처했다는 소식에 1925년 조직된 ‘임시정부후원회’ 회장으로 선출되어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적극 후원했다.
ㅇ 1936년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대의원회의에서 참의원과 역사편찬위원으로 활동했고, 1937년 임시정부의 군사무장투쟁을 후원하기 위한 ‘찬무회’ 회원으로도 적극 참여했다.
ㅇ 선생은 1942년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별세하였으며, 유해는 오아후 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 정부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안원규 선생에게 1995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으며, 정원명 선생에게는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