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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소개

조지 애쉬모어 피치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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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10-17 14:27 조회1,43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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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3. 7. 23 ~ 1979. 1. 20   미국

●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   

● 춘천의 병장

1920년 한인구제회 이사를 역임하고 1932년 윤봉길 의거를 지원했으며, 1940년 중국 국민당정부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승인을 위해 활동


생애 및 활동사항 
▲ 출생과 성장 

1883년 1월 23일 출생한 조지 애쉬모어 피치 선생은 중국 상해에서 장로교 선교사였던 아버지 조지 필드 피치가 한국인들과 접촉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모습을 보며 성장했다.


1909년, 미국에서 목사가 되어 상해로 돌아온 이후 선생은 YMCA에서 활동하며 크레인(Charles Richard Crane) 주중 미국대사에게 여운형 선생을 소개해 주었고 한국 독립운동가를 위한 회합 장소를 제공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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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운형 선생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1919년 미국에 설립된 한인구제회가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자, 조지 애쉬모어 피치 선생은 상해 주재 외국인 선교사들을 모아 적극적으로 모금 활동에 나섰고, 선생은 한인학교인 ‘인성학교’를 위한 모금활동도 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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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성학교 졸업생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는 상해 홍구공원에서 열린 일왕의 생일인 천장절과 합동으로 거행되었던 일본군의 상해사변 전승 축하식에서 단상의 일본군사령부 수뇌부들을 향해 폭탄을 던지는 의거를 감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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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 의거 장면

(출처 : (사)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인해 김구, 엄항섭, 안공근, 김철 선생은 일본 경찰에 쫓기게 되었는데, 당시 조지 애쉬모어 피치 선생은 이들을 자택에 숨겨 주었다. 

일제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선생은 이들을 중국인으로 위장시켜 아내 제랄딘 여사와 함께 상해를 탈출시켰다.


이후 선생은 프랑스 조계지역 언론과 경찰에 서한을 보내, 일본 경찰의 한국인에 대한 불법 체포와 검문에 항의 하였다.

1937년 일본군이 남경 대학살을 일으키자 조지 애쉬모어 피치 선생은 당시 남경에 있던 외국인들과 함께 국제위원회를 조직하여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알리는데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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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 의정원 신년 축하 기념사진 (출처 : 우리역사넷)


뿐만 아니라 선생은 1941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중국 국민당의 연락사항을 미국 전략정보국(OSS)에 전달하는 첩보작전을 수행하였으며, 이듬해 중국 국민당 정부를 상대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승인을 청원하였다.


광복 이후 선생은 한국의 YMCA의 총간사로 임명되어 6.25전쟁 중 구호활동에 전념하다 1951년 은퇴하였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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