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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소개

유정 조동호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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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5-25 15:12 조회1,5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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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1954, 독립운동가, 언론인, 사회주의운동가

2005년 건국훈장 독립장

생애 및 활동사항

    19127월 신규식이 조직한 동제사에 참여해 여운형·조소·선우혁·신석우 등과 이사직을 맡아 활동하였다. 19188월 상해에서 여운형·장덕수·김철·선우혁·한진교 등 5명과 같이 신한청년당을 조직했고, 파리평화회의와 미국 윌슨대통령에게 제출하기 위한 독립청원서를 여운형 등과 함께 영문으로 작성하였다.

 

당대표로 김규식을 파견했을 때, 중국어에 능하여 중국 중화신보기자로서 연락을 담당하였다. 19194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 선포될 때 임시의정원 의원에 피선되었으며, 29명의 의원이 모인 임시의정원 제1차회의에서는 국무위원으로 선임되었다. 또한, 임시의정원 충청도의원으로 선출되는 등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19196월경 대한민국임시정부 내 설치된 임시사료조사편찬부에서 위원으로 재직하면서 이광수·이원익·김병조 등과 한일관계사료집4권을 완성해 국제연맹에 제출하였다.

 

1921년 한중친선 및 한국독립과 중국혁명을 위한 상호협조, 경제·상업·교육 방면에 대한 상호원조를 목적으로 상해의 프랑스 조계푸스로 14호에서 한중호조사를 조직하고, 한국측 대표로 참석해 조중구·오희원 등과 교제과의 간사직을 맡아 활동하였다.

 

1923년 말 귀국해 이듬해 동아일보사에 입사, 기자 겸 논설위원과 특파원으로 종군기를 집필하였다. 한편, 1925년 조선공산당 결성에 참가해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정되어, 당의 강령과 규약을 기초하였다. 당에 대한 코민테른의 승인을 얻기 위한 대표로 모스크바에 파견되었으며, 조선공산당 상해지부에서 활동하다가 19282월 상해 일본영사관 경찰에 붙잡혀 4년의 옥고를 치렀다.

 

19333월 만기출옥해 조선중앙일보를 인수·간행하면서 무기명으로 항일논설을 집필·게재해 민족독립국가 달성의 당위성을 역설하였다. 1944년 여운형 등과 조선건국동맹을 조직하고 내무부를 맡아 활동하다가, 1945년 본격적인 무장투쟁을 위해 이석구 등과 군사위원회를 조직하였다.

 

1945724일 서울 부민관 폭탄의거가 일어나자 84일 관철정 집회소에서 붙잡혀 투옥되었다가 8·15광복으로 출옥하였다. 1945817일 제1차건국준비위원회가 여운형 등에 의해 조직되자, 선전부장을 맡아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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